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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런 개인적인 글을 읽어주시고, 찾아와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적은 것이긴 하지만, 저의 ‘죄악’ 의 증거는 몇 개 남겨두고 갑니다. * 글 정리하면서 느낀 건데, 카오리 좋아하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르더군요. 물론 지금도 유치하지만, 그 전은 차마 봐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녀는 제게 전환점인가 봅니다. 또 한 번 사랑에 무너지면 그때는 좀 철들까요?
![]() 거짓으로 가득한 생애를 보냈습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진실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자신이 했던 거짓된 표현에 대해 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가 함께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서술에 '언어'만큼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요?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그 시도에서 발생하는 희망만큼이나 절망적입니다. 근사치라도 표현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때로 결코 본질에 다다를 수 없다는 현실에서 오는 공허, 소외감, 그리고 좌절에 참담함을 금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말해 이것은 불가능을 향한 충동에서 오는, 그 욕구 충족의 불가능성에 대한 절망은 아니지요. 사람은 언어와 규율의 세계에서 태어나고, 자아는 인식 속에서 피어나는 균열에서 발생하며,‘실재’ 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기에, 이것을 부정하는 행위는 유아적 자기기만에 해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망은 그럼에도 언어로 사유하며 무언가를 서술해야 한다는 것에서 옵니다. 무언가에 대한 표현 자체가 거짓으로 느껴지는 결벽증이 이따금 찾아오는 것입니다. 언어 행위 자체가 원죄처럼 느껴지고, 그 강제적 구속이 저를 끌어내려 이윽고 침묵의 권위에 아래 그 위대함을 인정하게끔 합니다. 아아, 침묵의 미덕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성이 경박한 저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며 자중해야 할진데도 가볍게 잊고는, 또다시 궤휼한 말재간으로 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제게 혐오감을 느끼며 좌절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특별히 결벽증 때문이 아니라도 제가 쓰는 표현의 방식은 분명 심히 과장되어 있었습니다.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낯 뜨거움에, 그 저열한 언어 배열에서 오는 자괴감으로 인해 몸이 덜덜 떨려 당장이라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가득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도피 이상은 되지 않겠지요. 자신의 과오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그나마 자신에 대한 혐오를 미약하게나마 걷어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찾아와주시는 분 적은 마이너한 블로그에 올린 글에 두 분이 EX 90을 구입하셨습니다. 그 당시 주기적으로 방문해주시는 분들의 비율로 대략 추측하자면 2 분의 5 정도 되겠지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소니는 커널 형을 벨런시드 아머쳐가 아닌, 다이내믹 드라이브로 가기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매니아를 노린다는 건데 아마 제가 사용했던 EX90은 그런 과도기에 출현한 하프커널이 아니었나 생각되어 집니다. 그 실험의 집대성이 EX 700 인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EX 700을 만들고 나서, EX 90을 계량한 EX 500을 출시합니다.(EX85를 계량한 EX300도 출시됐습니다) 커널을 다이내믹 드라이버로 만든 것은 역시나 해상도를 조금 낮추더라도 공간감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고 그 공간감이 헤드폰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커널형의 소음 차단과 공간감을 동시에 잡겠다는 소니의 의지가 다이내믹 드라이브의 사용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이런 독특함이 아니라면 예전 영광을 되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어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겠죠. 구차한 설명과 예는 될 수 있는 한 자제하며 감상을 적으려 하고 있습니다만, 무언가에 대한 설명에 적절한 공감을 이끌기 위해 비유적인 예를 적용하지 않을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언어를 통한 소통이란 여전히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지만.... EX90과 단순 비교하면 소리의 해상도와 공간감이 월등합니다. 쉬이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EX 90은 흰 색 실이 똘똘 뭉쳐져 있어 소리의 뭉침이 EX500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음색이라면, EX 500은 그 흰 실이 구 형태로 뭉쳐진 입체적인 거미줄과도 같아, 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도 그 사이에 입체적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구 안에서의 통일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공기가 드나들 공간이 존재하기에 내부로 들어갈수록 그 하얀 선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들이 보다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EX 500에 큰 단점이 존재하는데 선이 너무 얇습니다. EX90보다도 선이 얇아서 단선의 위험도 높습니다. 가죽 케이스가 동봉되어 있는데, 케이스를 사용하는 일을 습관화하지 않으면 단선이 악몽이 되살아날 것 같아 염려됩니다. (패러디라면 패러디입니다;; 농담 반으로 쓴 글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 하나의 양념이 더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농약 바카스’입니다 (마음이 약해서 다른 것을 먹였다고는 하지만요). 이것 덕분에 도준 엄마의 비정상적인 집착은 관객에게 합리화 됩니다. 사실 농약 바카스 없었어도 모성의 복잡한 욕망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조금 더 불편한 영화가 됐겠죠. 하지만, 자식을 살해하려 했다는 것에서 오는 도준 엄마의 죄책감, 그 일 이후 아이가 저능아가 됐다는 것에서 오는 후회, 이렇게 자신의 과오로 인해 무능해진 자식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에서 오는 책임감이 도준 엄마의 병적인 집착을 관객에게 ‘무리 없이’ 납득시키는 장치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도준의 비정상적 행동과 함께 이야기를 이끄는 실마리가 되죠. 또한 정상으로 자라지 않아 독립되어 다른 여자를 갈망하기 힘든 도준과 도준 엄마가 저질스런 농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이렇게 세 편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세 편 모두 사건의 중심인 어떤 ‘상징’이 나오죠. 풀어내야 하는 과제이자, 힘없는 자들이 힘 있는 자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들춰내는 매개. 괴물에선 말 그대로 현실에 구현화된 ‘괴물’로 존재하는 그것. 살인의 추억에서는 그 상징이 존재하지만 끝내 밝혀지지 않은 실루엣으로, 마치 강림한 악마처럼 실재와 형이상학을 오갑니다. 마더에서는 그 상징이 말 그대로 상징으로서만 존재합니다. 아들의 선함을 주장하고 증명하기 위한, 마치 기독교의 사탄 이미지와도 같은 필요악이죠. 그 필요악의 구상이 절대선에 대한 찬양을 위한 것임은 물론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절제와 금욕으로 인해 뒤틀려진 욕망의 필연적인 발현이라 치면(사탄 외치면 많이도 쳐죽였죠), 마더에서 그 상징의 뿌리는 모성애에 있습니다. 성스러움의 상징이 악의 근원이라는 모순에 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발아한 악의 상징은 모성의 뒤틀린 욕망을 고발합니다. 이 영화에서 도준 엄마를 도와주는 사람은 친한 사진사 여성과, 백수 양아치 친구인 진태입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진태뿐이죠. 물론 그것도 돈을 받고 도와주는 것이지만. 아정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그녀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지옥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삶의 비참함 속에서 -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서 - 어떠한 권력을 획득합니다. 핸드폰 사진의 현상을 물어보는 그녀에게, 이 사진들은 그녀가 비참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부조리의 증거이자 일종의 컬렉션이 됩니다. 이 ‘굉장한’ 컬렉션은 그녀가 약자의 입장에서 더러운 세상을 까발릴 수도 있는 무기이자, 혹은 까발리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녀의 정신적 지지대가 되어 주는 듯 보입니다. 원조교제는 불법이고, 그들에게서 쌀을 받는 그녀이지만 사진이 찍힌 이상 그 남자들은 아정에게 약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남자가 싫고, 더럽고, 이 세상이 증오스럽지만 그 사진들을 지우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그 지옥 속에서 그녀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유희 일지도 모릅니다. 사건의 중심에 자리 잡은 그녀의 핸드폰이 쌀독 속에 감춰져 있던 것은 직접적이면서도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살인을 해버린 이상 도준 엄마도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자식을 정상적으로 기르지 못했다는 현실에서 주위 사람들의 무시와 폭력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그녀를 따라다닙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식의 결백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종국에 그녀와 그녀의 모성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녀에게도 구원은 있습니다.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네요.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 그런데, 그녀의 침을 맞고, 그녀의 한약을 먹은 여성은 과연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요? 혹은, 정상적인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요? 회의적입니다. 도준 엄마가 그런 것을 용납할 것이라 생각되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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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no//너도 건강히 지..by 빗소리 at 07/10 매번 오지만 미처 댓글은 .. by Xeno at 07/09 슈지님//그렇게 됐습니.. by 빗소리 at 07/09 이런, 결국 가시는군요... by 슈지 at 07/09 비공개님//쿨-하실 수 .. by 빗소리 at 07/09 슈지님//하하하하^^;;; .. by 빗소리 at 07/08 간만입니다. 다 읽고 격뿜;.. by 슈지 at 07/08 말랑님//삼천년만입니다! .. by 빗소리 at 07/04 비월군//오랜만이야 :) .. by 빗소리 at 07/04 전 하도 무심해서 그런지.. by 말랑 at 07/04 다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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